
1월 29일, 원주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반도체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차세대 반도체의 성능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마주할 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 자리였는데요.
현장에서 발표된 4가지 핵심 주제를 정리해 공유해 드립니다.
1. Wide Bandgap Semiconductor Devices for High-frequency, High-power systems: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발표자 : University of Washington 최정원 교수)
최정원 교수는 발표 시작부터 와이드 밴드갭(Wide Bandgap, WBG) 소재에 대한 시장의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흔히 실리콘 카바이드(SiC)나 질화갈륨(GaN) 소재로 넘어가면 고주파와 고출력 시스템의 모든 난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 이유로 소자의 '취약성'을 꼽았습니다. "자동차가 고성능이면 엔진이 빨리 망가진다"는 비유를 들며, 반도체 칩 역시 성능이 극대화될수록 내부적인 스트레스가 커져 실리콘(Si) 소자보다 훨씬 빨리 망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즉, 퍼포먼스는 압도적일지 몰라도 현장에서의 내구성과 신뢰성은 절대 실리콘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글로벌 연구 지형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미국은 국가 주도의 '파워 아메리카' 프로젝트를 통해 고전력 반도체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하려 하고 있고, 유럽은 지멘스나 ABB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대학, 연구소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기술력을 쌓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연구 수준과 저변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습니다.
발표 후 질의응답에서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소재에 집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순히 유행을 따를 것이 아니라 소재의 물리적 한계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영역(공정이나 신뢰성 평가 등) 사이에서 냉정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요약 및 정리
1. 와이드 밴드갭(WBG) 반도체의 명과 암
차세대 소재인 실리콘 카바이드(SiC)와 질화갈륨(GaN)에 대한 무분별한 낙관론은 지양해야 될 것.
- 성능과 신뢰성의 트레이드오프: WBG 소재가 고주파·고출력 시스템에서 혁신적인 것은 맞지만, "자동차가 고성능일수록 엔진이 빨리 망가진다"는 비유처럼 성능이 극대화될수록 내부 스트레스가 커져 칩의 수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음. 즉, 퍼포먼스는 압도적일지 몰라도 실제 현장에서의 내구성과 신뢰성은 아직 기존 실리콘 소자를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
- 글로벌 패권 경쟁: 미국은 국가 주도의 '파워 아메리카' 프로젝트를 통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고, 유럽은 지멘스나 ABB 같은 대기업이 대학·연구소와 원팀으로 움직이는 중. 이에 비해 한국은 연구 저변이 여전히 취약함.
- 우리의 과제: 단순히 유행하는 소재를 쫓기보다, 소재의 물리적 한계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공정 기술 및 신뢰성 평가 영역에 대한 냉정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함.
2. 전력반도체 기술동향과 미래 에너지 산업 (발표자 :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강혜민 교수)
강혜민 교수는 전력 반도체의 시장 통계와 에너지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구체적인 수치로 설명했습니다. 2024년 기준 전체 전력 반도체 시장은 약 50조 원 규모인데, 여기서 우리가 혁신 소재라고 부르는 것들의 비중은 작습니다. 실리콘 카바이드(SiC)는 전체의 10%도 안 되는 약 5조 원 수준이고, 질화갈륨(GaN)은 작년 기준으로 5,000억 원도 안 되는, 비중으로 치면 겨우 0.5%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90% 이상의 시장은 여전히 실리콘(Si)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가성비뿐만 아니라 필드에서 소자가 '절대 죽지 않는' 신뢰성 때문입니다. 전력 계통은 보수적이라 한 번 사고가 나면 회사가 휘청거리기 때문에 검증된 실리콘을 버리기 힘든 구조입니다.
전기차 시장에 대해서도 과거 수많은 보고서가 전기차의 DC-DC 컨버터 등이 SiC 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울 것이라 장담했지만, 2023년 들어 전기차 시장은 사실상 정체(캐즘)에 빠졌습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차를 사지 않고, 화재 문제나 주행 거리의 한계가 노출되면서 예측치는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하지만 진짜 승부처는 에너지 시장(Second Wave)입니다. 2030년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 비중이 커지면 전압 자체가 높아져야 전송 효율이 생기는데, 이때 고전압 반도체가 필수적이 됩니다. 최근 한국전력 등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뛰는 현상도 시장이 이미 이 흐름을 읽고 움직이는 증거라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연구 환경에 대해서는 한국은 칩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칩을 묶어 대용량을 내는 모듈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데, 일본의 히타치나 유럽의 인피니언 등이 장악한 이 시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후발주자입니다. 한국에너지공대(한전에서 만든 학교)는 직접 반도체를 만드는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대신, 만들어진 소자를 실증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약 3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고전압 소자를 테스트할 장비가 시중에 없어서, 학생들이 직접 남대문시장을 뒤져가며 PCB를 디자인하고 납땜하며 테스트 보드를 하나하나 제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고군분투 끝에 최근 한국전력의 지원을 받아 국내 최고 수준인 7,000V급 SiC PIN 다이오드 실증에 성공했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저전압 소자 여러 개를 직렬로 붙이는 것보다 고전압 소자 하나를 쓰는 것이 저주파 영역에서 에너지 효율이 훨씬 높다는 것을 증명하여 한전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강혜민 교수는 내후년까지 만 볼트 이상의 초고전압 소자를 직접 구현하고 실증하는 것을 목표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이어갔습니다.
>> 요약 및 정리
2. 전력반도체 시장의 냉혹한 데이터와 '에너지'라는 두 번째 파도
전력 반도체의 현주소에 대해 설명.
- 압도적인 실리콘의 지배력: 2024년 기준 약 50조 원 규모의 전력 반도체 시장에서 실리콘(Si)의 비중은 여전히 90% 이상임. SiC는 약 10%(5조 원), GaN은 0.5% 미만(5,000억 원 미만). 전력 시장은 사고 발생 시 리스크가 너무 커서 '절대 안 죽는' 실리콘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구조이기 때문.
- 전기차 캐즘과 세컨드 웨이브: 테슬라가 주도했던 전기차 붐(First Wave)이 화재와 주행거리 문제로 정체기에 빠지면서 시장 예측치가 빗나감. 하지만 진짜 기회는 2030년 에너지 시장(Second Wave)과 맞물려 올 것. 태양광·풍력 발전이 늘어날수록 전력 전송을 위해 전압 자체가 올라가야(고전압화) 손실이 줄어드는데, 이때 고전압 반도체가 필수적. 최근 한국전력 등 에너지 기업의 주가가 움직이는 이유도 이 맥락으로 판단됨.
3. 위성통신과 우주환경 원자산소(AO)침식 영향 평가 (발표자 : 주식회사 에이치시티 윤호상 연구소장)
윤호상 연구소장은 위성이 활동하는 지구 저궤도(LEO) 환경이 지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특히 원자산소(Atomic Oxygen, AO)에 의한 기판 및 소재의 침식 문제가 위성통신의 수명을 결정짓는 치명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지상에서의 산소는 보통 두 개의 원자가 결합한 형태이지만, 저궤도에서는 태양의 강한 자외선에 의해 산소 분자가 쪼개져 단원자 상태인 '원자산소'로 존재하게 됩니다. 문제는 위성이 초속 약 7.8km라는 엄청난 속도로 궤도를 돌면서 이 원자산소들과 끊임없이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단순한 접촉 수준을 넘어 소재의 화학 결합을 끊어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특히 위성통신 안테나나 태양전지판, 그리고 위성 외벽에 사용되는 폴리이미드 같은 고분자 재료들은 원자산소와 만나면 산화 반응을 일으켜 마치 가스가 되어 날아가는 것처럼 소재가 깎여 나가는 '침식(Erosion)' 현상을 겪게 됩니다. 이렇게 소재가 얇아지거나 성질이 변하면 위성 내부의 정밀 소자가 우주 환경에 직접 노출되거나 통신 성능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윤호상 연구소장은 이를 평가하기 위해 지상에서 우주 환경을 모사한 원자산소 빔(Beam) 조사 장비를 통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 위성이 우주에서 5년, 10년 동안 맞을 원자산소의 양(Fluence)을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쏘아 소재가 얼마나 깎여 나가는지 질량 변화를 측정하고, 침식률(Erosion Yield)을 계산하여 수명을 예측합니다. 윤 소장은 향후 저궤도 위성통신(스타링크 등) 시장이 커짐에 따라, 이러한 원자산소 내구성을 갖춘 코팅 기술과 이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표준화된 시험 인증 체계가 위성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 요약 및 정리
3. 우주로 향하는 반도체: 원자산소(AO)와 침식 문제
위성통신 산업에서 간과하기 쉬운 '우주 환경에서의 소재 노출' 문제.
- 공포의 원자산소(Atomic Oxygen): 저궤도(LEO) 위성은 초속 7.8km로 비행하며 산소 분자가 쪼개진 '원자산소'와 충돌함. 이 충돌 에너지는 소재의 화학 결합을 끊을 만큼 강력함.
- 침식: 위성 안테나나 외벽에 쓰이는 고분자 재료들은 원자산소와 만나면 산화되어 가스처럼 날아가는 '침식(Erosion)' 현상을 겪음. 소재가 깎여 나가면 내부 소자가 우주 환경에 노출되어 위성 수명이 끝남.
- 지상 실증의 중요성: 위성을 띄우기 전, 지상 가속기 장비를 통해 5~10년 치의 원자산소를 미리 쏘아보고 침식률을 계산하는 인증 체계가 위성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
4. 우주방사선이 반도체의 신뢰성에 미치는 영향 (발표자 : 한국원자력연구소 김동석 선임연구원)
김동석 선임연구원은 반도체가 미세화될수록 우주방사선(Cosmic Ray)에 의한 오류 발생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이제는 우주뿐만 아니라 지상의 자율주행차나 데이터센터에서도 이 신뢰성 문제가 핵심 화두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우주방사선에는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무거운 중이온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입자들이 반도체의 아주 작은 소자(Transistor) 내부를 통과할 때 전하를 생성시키며 전기적 간섭을 일으킵니다. 이를 단일 사건 효과(Single Event Effects, SEE)라고 부릅니다. SEE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첫째는 소프트 에러(Soft Error)로, 데이터 값만 0에서 1로, 혹은 1에서 0으로 바뀌는 '비트 플립(Bit Flip)' 현상입니다. 이는 기기를 껐다 켜거나 데이터를 다시 쓰면 회복되지만, 자율주행 중인 자동차의 제어 장치에서 발생하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드 에러(Hard Error)로, 강한 입자가 반도체 구조 자체를 태워버리거나(Burn-out) 영구적인 과전류 상태(Latch-up)를 만들어 소자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현상입니다.
지상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나 먼 우주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입자가 지구 대기권의 질소, 산소와 부딪히면 '중성자'가 발생하는데, 이 중성자가 지상까지 내려와 우리가 쓰는 서버나 자동차 반도체를 공격합니다. 앞서 다른 발표에서도 언급되었듯, 이 결함은 노후화와 상관없이 언제든 발생하는 '우발적 결함'이기에 더욱 무섭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양성자 가속기 등을 활용하여 이러한 방사선 영향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칩에 인위적으로 강한 방사선을 조사하여 어느 정도의 에너지 수준에서 오류가 발생하는지 문턱 전압(Threshold)을 측정하고, 칩 내부의 어떤 설계 영역이 방사선에 취약한지를 분석합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들이 이미 이러한 방사선 내성 설계(Rad-Hard)와 인증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원자력연구소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장비를 찾아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신속하게 신뢰성을 평가받을 수 있도록 가속기 인프라를 고도화하고 있다고 밝히며 발표를 마쳤습니다.
>> 요약 및 정리
4. 우주방사선 신뢰성 평가: SEE 리스크
반도체가 미세화될수록 우주방사선에 의한 '소프트 에러'가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함.
- 우발적 결함 리스크: 반도체 고장은 낡아서 생기는 마모 결함(Bath-tub curve)도 있지만, 중성자에 의한 에러는 시간과 아무 관계가 없음. 갓 만든 칩이라도 언제 어디서든 방사선 입자와 만나면 에러가 발생함.
- 자율주행의 생존권: 자율주행차에서 비트 하나가 바뀌는 '비트 플립(Bit Flip)'이 발생하면 연쇄 추돌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 그래서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 방사선 내성 인증을 받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 국내 인프라 고도화: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양성자 가속기를 통해 반도체 칩의 방사선 취약점을 분석하고 있음.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신속하게 신뢰성 검증을 마칠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장 중.
이번 세미나는 차세대 반도체의 우수한 성능 이면에 숨겨진 내구성과 신뢰성이라는 무거운 숙제에 대해 배우고 왔습니다. 연구 현장에서 들려주신 생생한 고민과 상세한 설명들 덕분에 차세대 전력 반도체가 나아갈 길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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